이 대화는 각자의 개인전을 준비하던 중 같이 전시 공간을 섭외하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그래서 각자의 개인전의 형식으로 열리지만, 부분적으로 공동의 공간도 설정하게 되었다. 전시의 서문을 작성하는 방식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고 서로의 작업에 관해서 묻고 답하는 과정을 기록하여 보여주는 방식으로 e-mail 대화을 기획했다.
김상균-
사실 처음에는 음성녹취를 활용해 녹취록의 형식을 생각했지만, 생각만큼 잘 구현되지 않아 유감입니다. 제가 조리 있게 말하지 못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 경험이었습니다. 그러나 전시와 녹취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미 여러 번의 대화를 나누었고 한편으로 스스로 작업에 대해 정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서로의 공통점을 확인함과 동시에 차이를 이해하는 과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전기숙 + 김상균
e-mail 대화
2025.09.10.~19 갤러리 레미콘
<전기숙 - 마주친, 얽혀있는 것들>과
<김상균 - 의도적 주의력 결핍>

전기숙/ 불타는 밤, 붉은 얼굴. 불멍, 너멍 oil on canvas 97x97cm 2020.
최근 작가님의 작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변화’였습니다. 우도에서 생활하면서 진행했던 작품의 전시를 봤을 때 가졌던 인상입니다. 저는 사람을 구성하는 세포가 매일 소멸하고 다시 생성되는 것처럼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르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살아있는 것의 증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작가님 작업의 변화가 반가웠던 것 같습니다. 더 최근의 작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다시 변화했습니다. 이 변화는 어디서 시작되었고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전기숙-
<변화>라는 개념은 상균작가가 말한 세포의 생성과 소멸처럼, 나에겐 어쩌면 너무 당연해서 별로 염두에 두지 않는 개념인 듯합니다. 내 팔목 위의 0.1초 전의 시계가 0.1초 후, 때가 타서 미세하게 낡은 모습으로 달라진 것처럼. 쉽게 인식하지는 못하지만, 만물은 매시간 변화하는 것이 너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매 순간 세상엔 그 무엇도 같은 것이 없다.’라는 전제가 제겐 기본값으로 있는 것 같습니다. 하물며 내가 하는 하나하나의 작업들은 매번 같은 것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떤 변화를 시도한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내가 더 끌리는 쪽으로 이동하는 행위(그것이 사는 곳이든, 관심사든, 작업 내용이든)의 결과물로써 변화의 과정으로 보여지는 것 같습니다.
다만 변화-라는 단어를 제 작업들을 크게 주제별로 분류하는 것에 적용한다면, 변화의 과정에 앞서서 과연 내가 작업을 하는 원동력이 뭘까? 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먼저 나와 인간 외 대상들에 대한 많은 호기심과 세상의 작동원리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도 여러 생물의 한 부분이라는 전제가 중요하고, 현시대의 개별적인 인간들 사이의 섬세한 관계에서 기인하는 문제 인식보다는, 더 긴 시간을 바탕으로 한, 우주와 지구라는 세상에 인간이라는 동물로 태어난 나라는 존재와 그 주변에 대한 근원적인 관심과 질문이라고 할까? 이런 인간 외 것에 호기심이 많다 보니, 신기한 것을 관찰하게 되고, 관심을 가지게 되는 대상이나 단상들을 이해하고 탐구하는 방식의 언저리에서 발생하는 재미난 요소들을 이미지-회화-작업으로 만들어냅니다.
이런 호기심을 발동시키는 작업의 소재나 주제를 선택하는 계기는 주변 환경, 장소의 요소에서 기인하는 듯합니다. 가령, 제주로 이주 전, 서울이라는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시에서 살면서는 나라는 주체와 세상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면서 10여 년 동안 해왔던 일련의 작업(우월성을 나누기 힘든 상대적인 관점-곤충의 시각 구조를 차용)과 주제에 대해 조금씩 체화가 되어가면서 다음 단계로 사고의 전환이 일었음에도 기존의 패턴화된 작업 결과물의 딜레마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러던 중 울릉도 한 달 살기를 통해 섬생활에 대한 관심이 생겨, 제주도-우도로 입도하게 되었고 4년간 우도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마침 제주도는 나에게 호기심을 발동시키는 대상들로 무궁무진했습니다. 특히 관광객이 빠져나간 고립된 우도라는 섬의 밤은 연극무대의 막이 올라가기 전처럼 어둡고 조용하며 신기하고 설레임을 주는 시간이자 장소였습니다. 거기에 더해 말이라는 동물을 만나고 친해져서 돌보았던 시간은 새롭게 친해지게 된 자연이라는 대상을 탐구하게 하는 행운과도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섬의 밤 풍경과 애정이 생긴 말들을 그리게 되었고, 작업의 탐구 대상에서 받은 인상에 걸맞은 회화적 표현 방법을 선택하니, 결과물인 작업은 크게 변화된 상태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제주시로 이주한 최근에는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우도의 밤 품경보다 말이 있는 조용한 밤의 초원에서 느꼈던 신비로운 에너지의 체험들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어 회화작업으로 풀어내고, 말을 통해 관심을 가지게 된 자연의 비가시적인 신비로운 에너지를 버섯이나 바위 등 여러 방면으로 탐구하면서 확장해가는 중입니다.
전기숙-
최근작 <의도적 주의력 결핍>에서 몰입에 관한 많은 언급을 했는데, 상균작가가 인식하는 몰입의 개념이 궁금합니다.
김상균-
먼저 지속되는 변화에 대한 일방적 질문에 작가님에게 피로감을 쌓이게 한 것 같아, 답글을 읽으면서 미안한 마음입니다. 살아있는 사람한테 살아있어서 반가웠다고 말한 꼴이 되었습니다. 건강하다니 다행입니다. 작가님은 더 끌리는 쪽으로의 이동이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다만 끌리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는 전제가 필요하고 그 후에는 용기도 필요합니다. 때로는 변화라는 것이 어려워 보이기도 합니다.
이왕 질문했으니 제가 느꼈던 작가님의 작품의 변화에 대해 잠깐 언급하겠습니다. 우도에서 생활하면서 그렸던 말과 풍경 등의 그림은 이전의 작업과 달리 그리는 시간이 많이 줄었을 것으로 보였습니다. 밀도가 사라진 화면은 아이러니하게도 화면 밖의 우도의 시간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 선택이 끌리는 방향을 향한 것이라고 짐작했고 그래서 반가웠던 것입니다. 최근의 추상적인 밤의 풍경은 짧은 시간이지만 다시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첫인상은 강한 콘트라스트입니다. 주관적인 감상이지만 편안해 보지는 않았습니다. 관객을 튕겨내는 듯한 화면은 그 뒤편의 의도를 궁금하게 만듭니다. 여기까지가 즉각적이고 강하게 받았던 인상입니다.

전기숙/ 길들이기1 oil on canvas 130x97cm 2022
최근의 작품에 대한 설명에서 작가님은 “신비로운 에너지의 체험들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어 회화 작업으로 풀어낸다."라고 말했습니다. 끌리는 방향으로 향하면서 느꼈던 말의 촉감, 밤의 공기 등의 개인적이고 실제적인 경험과 이어서 발생하는 애정에 기인한 관심, 복잡하게 순환하는 자연 그리고 이 풍경 속에 작가(각각의 시선이 다름을 존중하는 의미로 곤충의 시각구조를 차용해서 그렸던) 그래서 자연을 향해 너그럽게 열려 있는... 이렇게 이해했습니다. 다만 이후에 회화로 풀어내는 부분에 대한 것이 궁금합니다. 여러 차례의 대화를 나누었고 컨트롤 되는 것과 컨트롤 되지 않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에서 짐작해 보았습니다. 회화로 보자면 우연적인 것과 가시적인 것, 자연으로 보면 이해할 수 있는 것과 그 이면의 심연, 타자의 관점을 존중하여 여백(섣부르게 판단 내리지 않고 이해를 보류하는 영역)으로 두는 작가... 이런 생각들을 연결하여 떠올려 볼 수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을 답변으로 달아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전기숙/달빛아지랑이 oil on canvas 94x130cm_2024/ 밀고 당기고_oil on canvas 194x261cm_2024
몰입에 대해 질문하셨습니다. <의도적 주의력 결핍>에서 저는 주의력 결핍을 더 강력한 몰입이라고 일반적인 의미와는 다르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주의력 결핍 장애를 규정하는 것은 규칙을 가지고 있는 전체가 규칙을 따르지 못하는 소수에 대해 일방적으로 규정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동시에 그 소수는 더 강력하게 몰입할 것이 있기 때문에 전체와 어긋나는 행보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몰입을 추구한다고 말합니다. 동시에 몰입을 추구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의도적이라는 말을 붙였습니다.

김상균/ 의도적 주의력 결핍 #1_oil, acrylic and ink on canvas_227.3x909cm_2020
규칙을 만들었습니다. 지금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먼저 살피고 몸이 반응한다면 행동한다. 정도의 간단한 규칙입니다. 그렇게 움직인다면 발생하는 것을 몰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작업을 하는 시간을 그냥 잘 보내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제의 회화의 표면과 오늘이 회화의 표면이 달라도 되는 것입니다. 다만 과거의 회화의 표면이 완전히 지워지거나 망각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흔적으로 남은 이미지나 각각의 다른 방식을 행동했던 기억 들은 후에 또 다른 방식과 크로스 되어 놀이의 소재가 되기도 합니다. 저는 이것을 재즈의 변주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전기숙-
상균작가와의 대화에서 잠깐 잊고 있었던 저의 강박에 대해 떠올리게 됐습니다. 가끔 글을 쓰거나 대화할 때 등 타인과의 소통 시,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을 대체한 이 단어가 얼마나 적절한지 따지며, 집착하는 증세가 있습니다. 그래서 설명이 길어지기도 하고, 말꼬리 잡는다는 핀잔을 자주 듣기도 하는데요. 이번에는 ‘변화’라는 단어에 강박을 느끼며 정확한 뜻을 표현하고자 하는 고질병이 도졌던 것 같습니다. 머쓱해지는 대목입니다.
상균작가가 제 작품들에 대해 ”강한 콘트라스트와 편안하지 않음, 관객을 튕겨내는 듯한 화면"이라 표현하고 그 제작 의도에 대해 궁금해 했습니다. 또한 컨트롤되지 않는 부분과 우연적인 것 등 제작과정에 관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작품을 제작하는 것은 물자와 시간, 노동력 등 많은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생산자의 입장에서 제 작품들에 이런 공을 들인 만큼, 에너지의 낭비됨이 없이 하나하나 존재감을 가지고 그 값어치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편안함을 구사하는 방식은 꼭 제가 아니더라도, 꼭 회화작품이 아니더라도 더 훌륭한 방법론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작들에서 편안함은 철저히 배제하고 싶었습니다. 어쩌면 화면 안 요소들끼리 지속적으로 충돌시켜 불편하고 신경쓰이게 하는 것. 색상의 충돌, 기법의 충돌, 질감의 충돌 등 기운이 하나로 규정되어서 머무르기보다는 끊임없이 화면 안에서 서로 충돌하여 순환이 이뤄지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상균작가 자신의 작업을 얘기하면서 ‘재즈’를 언급했는데요. 이와 연결해서 평소 제가 작업하는 과정을 ”혼자 두는 바둑‘같다고 자주 생각합니다. 하얀 캔버스를 앞에 두고 먼저 검정 젯소로 바탕을 칠합니다. 그것이 첫 번째 ’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두운 밤풍경이 펼쳐져 있다는 느낌과 작품의 반 이상이 진행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제가 스스로 최면을 건다고도 볼 수 있겠네요. 그리고 그 위에 여러 색의 물감을 흘려서 흔적을 고착시킨다든가, 말이나 버섯을 묘사하는 등 두 번째 수를 둡니다. 작품마다 순서가 일정하지 않고, 화면 안에서 바로 직전 행위의 결과물을 놓고 순차적으로 그 다음을 이어가는데, 나 혼자서 바둑이나 장기를 두듯이 그 전과 그 후를 한수 한수 이어 나갑니다. 심지어 어떤 때는 먼저 둔 한 수에서 다음 수를 어떻게 놓을까. 즉, 어떻게 다음 이미지를 쌓아갈까를 고민하며 수일 동안 캔버스를 노려보기만도 합니다. 그 고민의 시간 동안 화면의 어디에 어떤 색을, 어떤 이미지를 넣을까. 스며듦과 충돌의 기운이 이미지와 색으로 잘 조절되어, 화면이 기운생동 해지도록 고민합니다. 그리는 시간보다 화면을 구성하고 고민하는 시간이 더 길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혼자 두는 바둑, 재즈. 혹은 요즘 관심을 갖고 공부하고 있는 불교의 연기론과도 연결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번 전시를 함께 준비하면서 상균작가에게 선물- 증여받은 비정형 캔버스를, 작품으로 이어가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 될 수 있고, 어쩌면 상균작가의 첫 번째 질문으로 시작해서 이어가는 중인, 지금 우리의 대화도 이와 비슷할 것 같습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나중에 다시 상균작가의 다른 사용 시리즈에서 질문하도록 하겠습니다.


전기숙/ 달빛 아지랑이 oil on canvas 194x130cm 2025
검은 치마 물들이는 유채,유채,유채10 oil on canvas194x130cm 2024
제 작품에서 강한 대비-콘트라스트는 시선을 그림으로 끌어들이고, 또 그 안에서 낯선 차원으로 이끄는 방법에 효과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서 대비는 색상끼리의 대비도 있고, 표현 방법의 대비도 있습니다. 먼저 색상 대비를 보자면, 주로 밤처럼 느껴지는 어두운 배경이 있고, 화면의 중심부에 최소한의 익숙한 단서로서 형태가 묘사된 대상(말, 버섯, 유채꽃등)을, 비현실적인 빛의 밝기나 색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모든 것이 잘 보이는 낮은, 눈앞의 현실만을 직시하게 만들고, 한없이 펼쳐진 우주에 떨궈진 우리는 작은 존재들이라는 것을 외면하게 만듭니다. 반면 밤처럼 보이는 어두움은 일상을 벗어나 우주의 세계가 있음을 상상하게 만드는 배경입니다. 또, 색이라는 것은 빛에 의해 가변적입니다. 태양 빛에서 벗어난 밤이라는 설정은 자유로운 빛을 상정하고, 그에 따라 색도 자유로울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합니다. 대상과 짝지어진 고유색이란 없고, 색도 빛에 따라 상대적이라는 전제가 저에게 있기에, 고유색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비가시적인 생동의 에너지를, 붓이 아닌, 물감을 뿌리고 흘리는 등 중력의 힘을 이용하여 표현합니다, 속도도 빨라지고, 즉흥적이며, 캔버스를 이동시키기 때문에 제 몸도 분주해집니다. 이런 우연적인 부분이 대상을 재현한 부분과도 섞여서, 예상치 못한 흔적으로 고착되기도 하고, 추상적인 효과를 만들어냅니다. 이런 변속과 리듬, 즉흥성이 뒤섞이는 와중에 이런저런 나의 에너지까지 그 속에 녹아드는 것을 느낍니다.


나는나는 자라서 이상하고 멋진 소마가 될 거예요
oil on canvas 194x130cm 2025
그림자 말 oil on canvas 194x130cm 2025
질문- ‘전체의 규칙에 따르지 못하는 소수-사회적 규범에 따르고자 하면서 발생하는 개인의 몰입에 대한 방해? 혹은 침범?-에 대해서 문제점을 인식하고, 이러한 문제점이 상균작가 본인에게도 적용되어 ‘몰입’이라는 주제를 갖게 되었다‘라고 이해했습니다. 최근작들을 본인의 몰입의 결과물이라고 봐도 무방할까요?
회화작업이 주가 되는데, 작업 과정이 독특해 보입니다. 예를 들어 제 작업은 일반적인 회화작품의 과정처럼, 하나의 작업이 여러 층의 물감으로 쌓이더라도,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적절함에 이르렀을 때 그 작업은 완성이 되고, 다음 작업은 다른 공간(화면)을 점유하면서 새롭게 시작하게 되는데요. 작가님의 작업은 작업 시간마다의 결과물이 하나의 점유 공간(화면) 위에 쌓이고 덮이는 과정이 꽤 두껍게 반복되는 듯합니다, 또 이러한 점유 공간이 여러 개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 방식을 선택하게 된 이유부터 세부적인 작업 진행 과정이 궁금합니다. 또 그 속에 그려진 이미지들의 내용에 대해서도 궁금합니다.
김상균-
전시가 얼만 남지 않았는데 긴 답변을 작성하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이전의 대화에서 나오지 않았던 말들이 눈에 띕니다. 혼자 두는 바둑, 배경이 밤인 이유와 고유색이 없다는 것 역시 동의하며 인상적입니다. 그리고 작가님이 경험하는 몸이 분주해지는 순간을 저는 아마도 몰입이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답- 소수에 대한 언급은 <의도적 주의력 결핍>이라는 제목을, 정확히는 주의력 결핍이 더 강력한 몰입이 아닐까를 설명하기 위한 것입니다. 꼭 소수여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수 역시 전체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많은 부분 스스로의 성향을 억제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하고 싶은 것이 있느냐입니다. 자본주의사회에 속해 있고 능력주의 경쟁 체제를 경험하고 있는 시각 예술가로서 이미 예견되었던 불편함을 다시 체감하는 시점에 부득이하게 지금 하고 싶은 것이 있느냐는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아마도 저는 몰입을 상당히 잘하는 편이고 즐겼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몰입이 희미해지는 것을 불편하다고 느꼈고 이 과정에서 몰입이 ‘무엇을’의 영역으로 떠오른 것 같습니다.

김상균/ Are You Lonesome Tonight?_oil on canvas_227.3x545.4cm_2018
2018년의 작업 <Are You Lonesome Tonight?>에서 이미지와 상관없는 선을 위에서 아래로 그린 적이 있습니다. 이전부터 다른 회화의 표면들을 한 화면에서 사용하기는 했으나 이것은 “에라 모르겠다!”에 가깝다는 의미에서 조금 다릅니다. 이 작업을 진행할 즈음에 평론가와 평문 작성을 위한 대면 약속이 있었고 그날 약속 장소로 가던 길에 접촉사고가 있었습니다. 후에 다시 만나서 작업 이야기를 하던 중 접촉 사고와 회화의 선이 같은 것 아닌가라는 이야기를 평론가로부터 들었습니다. 사고라는 생생한 경험은 직관적인 이해를 도왔습니다. 사고는 감각을 깨웠고 5:5니 어쩌니 하며 지나가는 아주머니들의 작은 소리까지도 또렷하게 들리게 만들었습니다.

의도적 주의력 결핍 #6,모듈(3x9)_혼합재료_가변크기_진행중 – 예술공간 이아2023
몰입은 한 인간이 스스로의 성향과 의지를 가지고 깨어있고 살아있음을 자각하는 인간 본성적인 활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매일 “주인공 깨어있는가?”라고 묻는 어떤 스님처럼 오늘 어떤 것을 할 것인가를 매 순간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그려진 표면이 아니라 그리는 동안 몰입하고 활동했던 한 사람의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작업에서는 며칠 혹은 매일 더 짧게는 매 순간마다의 변화를 인정합니다.
세부적인 작업 진행과정은 사실 너무 많은 방식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작업의 개념상 그 방식은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는 것이면 가능하기에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그것은 나의 몰입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설명하지 않아도 됨은 가벼움을 위한 전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벼움은 부담을 줄이고 끌리는 쪽으로 쉽게 발을 딛게 합니다. 동시에 가벼운 움직임에 따라 풍경이 변하고 공기가 바뀌는 산책처럼 작업은 선순환하고 몰입을 유지하게 합니다.

김상균/ 의도적 주의력 결핍 #6-모듈 작업과정
<의도적 주의력 결핍>의 방식을 채택한 이후에 경험하게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항상 내가 생각하지 않았던 지점에 도착한다는 것입니다. 가장 성취감을 주는 부분입니다. 변주도 관찰되는 것 중에 하나입니다. 많은 회화적 방식들을 사용하게 되는데 어떤 시점에 이 방식들이 서로 융합되어 나타납니다. <의도적 주의력 결핍>의 초기에는 망각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그 빈자리를 새로운 것인 오늘이 대체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후의 진행은 망각하되 완전히 잊히는 것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오늘 새로운 것을 시작하더라도 부분적으로 남아있던 기억은 현재의 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질문- 버섯의 포자를 이용한 드로잉, 돌가루를 사용하는 것 등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몇 번의 만남에서 진행 상황들을 봤지만 이전 작업들 위주로만 대화한 것 같습니다. 변화, 확장, 연결 등의 선입견을 포함하는 단어는 자제하겠습니다.
전기숙-
몰입을 돕는 ‘가벼움의 전략’이라는 표현이 인상적입니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열려있음, 유연함으로도 느껴집니다.




유령버섯1,2,3,4 종이 위에 버섯 포자, 색연필 21x29.7cm 2025
<유령버섯>-포자 드로잉시리즈를 하고 있습니다. 말을 돌보면서 겪었던 많은 일 중, 말의 배설물 위에 돋아난 버섯을 발견했던 일은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고, 어쩌면 그것이 현재 버섯 작업을 하도록 이끌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중에 찾아보고 알게 되었는데 그 말똥버섯은 환각작용을 일으키고 신경계통을 해치는 독버섯이었습니다. 최근 다시 버섯을 관찰하기 위해 숲을 찾아다니고, 집에서 키워보기도 했습니다. 버섯을 식물로 착각하면서 가졌었던 선입견을 깨고, 동물도 식물도 아닌, 균류가 가진 특성에 대해 많은 것을 깨우치게 되었습니다. 사실 버섯에 관해 여러 가지 재밌는 부분들이 많지만, 번식을 위한 포자의 퍼트림 방식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집에서 키우던 느타리버섯이 밤사이에 갓 아래 주름에서 조용히 뽀얀 포자를 퍼트려 흔적으로 남겼던 일을 계기로, 숲에서 발견한 이름 모를 버섯들을 채취해서 종이 위에 올리고, 포자가 남기는 흔적을 기록하는 드로잉을 했습니다. 뽀얀 포자는 다양한 색채로 표현되지는 않지만, 버섯의 실루엣을 예상할 수 있는 단서를 주고, 포자 알갱이가 두께로 쌓여서 종이 위에 남긴 요철과 농담은 생명의 실체이자 에너지의 흔적이었습니다.

전기숙/제1의 버섯이 제2의 버섯을 낳고 oil on canvas 194x130cm 2025
이번 전시에서 상균작가에게 제공받은 비정형 캔버스를 두고 뭘 그려야 할지 몇 달 동안 고민했습니다. 형태가 강한 그 캔버스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텅 비어있는 중성적인 공간이라기보다는 이미 독립된 사물의 성질을 지닌 듯이 다가와서, 그 형태에 어울리게 그려질 대상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캔버스의 비대칭적인 특이한 형태 그 자체를 이용해보자고 생각하게 되었고, 보편적인 형태로 특정되지 않는 성질을 지닌 암석-돌과 흐르는 용암으로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화산암은 내가 우도에서 몇 년동안 말을 돌보던 초원 아래의 기암괴석이자, 제주에서 가장 흔한 소재이고, 몇 십만년 전, 제주의 시작을 만들어낸 화산 폭발의 흔적이자, 현재 모든 생명들의 삶의 터전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는 대단합니다.
돌은 그 형태가 제각각이어서 표면의 질감과 무게, 색상, 입자 등으로만 인식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형태를 빼고 질감과 색만으로 암석을 잘 표현하고자, 석재상을 돌아다니며 현무암가루를 구해오고, 직접 물감으로 제작하여 사용하였습니다. 현무암 가루와 미디엄 연구를 거쳐서 최대한 광택을 없애, 거칠고 메마른 느낌으로 암석을 표현하고, 유연하게 흐르는 듯한 강렬한 색상의 용암을 대비시켜 한 화면에서 서로 이질적으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이를 통해 같은 성질의 물질이 시간과 압력, 온도 차이로 인해 달라진, 에너지의 변환을 연상시키고 싶었습니다.
또한 전시 공간인 <갤러리레미콘>이 바위를 그대로 노출시켜 벽으로 만든 것에 주목하여, 전시되었을 때 건물의 벽이 된 암석과 비정형 캔버스에 그려진 암석이 서로 마주할 수 있게 설치하고자 했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혼자 두는 바둑’처럼 이번 <한때 뜨거웠던 기억-다른 사용> 화산암 시리즈는, 주어진 전시 공간의 바위벽과 주어진 캔버스의 비정형의 태라는 각각의 두 번째 수를 활용하여 그다음을 이어간 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전기숙/ 한때 뜨거웠던 기억1-다른 사용 방풍나무#10 oil on canvas 226x151cm 2025
질문-<의도적 주의력 결핍> 외에 방금 언급한 <다른 사용> 작업이 있고, 그 외에 퍼포먼스 형식의 작업 등 회화 외 다양한 작업물들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 캔버스를 제공 받은 저와의 상황처럼 손수 제작한 캔버스를 타인에게 제공하는 <다른 사용>은 어떤 의미인지, 그 외 작업들의 의미도 궁금합니다.
김상균-
퍼포먼스 형식이라면 아마도 회화의 과정 중 물감을 묻혀 쏠 수 있는 활을 만들고 쏘는 것을 비디오로 촬영한 것을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진행했던 회화의 방식 중 한 가지입니다. <의도적 주의력 결핍>은 계속적으로 오늘의 몰입으로 회화의 표면이 대체되는 방식입니다. 더욱이 모듈의 형식을 한 <의도적 주의력 결핍 #6- 모듈>은 재배치라는 과정이 있어 더더욱 그러합니다. 그래서 예전부터 중간 과정을 사진으로 기록했고 최근에는 비디오로도 기록해보고 있습니다.

김상균/ 의도적 주의력 결핍 #6-모듈, (4x8) 2025.7.30.-8.10 작업과정
촬영된 것을 작가님께 중간에 보여드렸고 아마 그것을 기억하고 질문하신 것 같습니다. 이것 역시 여러 가지 방식 중 하나입니다. 정확하게 무엇을 위해 선택된 방법이라고 단정 지어서 말하기가 꺼려집니다. 그냥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놀이에 가깝다는 것과 가벼운 선택입니다. 이어서 최근 비디오 촬영을 시작한 것도 영향이 없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비디오로 촬영하기에 좋은 활동입니다. 활과 화살을 만드는 과정에 대한 생각과 실행으로 자연스럽게 몰입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전시장에 설치를 위해 둥근형태의 벽면을 미리 만들어봤고 이것은 훌륭한 과녁입니다. 아주 가벼운 선택들이지만 이것들은 얽혀있습니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어떤 조건이 되면 이슬이 맺히듯이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김상균/ 의도적 주의력 결핍 #6-모듈 2022, 제주현대미술관
<다른 사용>은 <의도적 주의력 결핍#6>을 제작하던 중 시작하게 된 작업입니다. 끌리는 일이라면 회화가 아니라도 상관이 없었고 목공작업에도 관심이 많았으며 당연하게도 캔버스를 짜는 일은 너무나도 익숙한 일이었습니다. 시작은 산책을 하다가 쪽지(양심까지 버리지 마세요라고 쓰인)가 붙어있는 버려진 의자를 발견한 것입니다. 작업실로 가져왔고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도 처음부터 캔버스를 만들 생각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에 <의도적 주의력 결핍 #6- 모듈>을 제작하고 있었고 회화의 선이 밖으로 연장되는 것을 상상하여 목공작업을 병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재료로 가져온 것이고 후에 모듈형식의 다수 캔버스와 같이 배치할 요량으로 캔버스를 제작했고 그 자체로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어떤 인연으로 저는 의자를 둘러싼 갈등과는 다른 사용을 하게 되었습니다.

김상균/ 의도적 주의력 결핍 #6 –다른 사용 작업과정
<다른 사용- 방풍나무>는 귤 밭의 방풍나무를 전지하는 과정에서 상상하게 되었고 23년의 전시에서 처음 시작 했습니다. 가볍게 아주 가까운 그리고 끌리는 일이라는 생각은 당연하게도 일상적인 일들에서 모티브를 발견하게 합니다. 캔버스를 만들었던 경험에서 이어 진 것이고 비정형의 선을 포함한 캔버스를 상상했습니다. 상상에 이은 실현의 과정은 즐거운 일이었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작업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예전에 <Making a Table>이라는 비디오 작업을 했습니다. 두개의 시점에서 테이블을 제작하는 과정을 기록한 비디오인데 하나는 테이블을 만드는 과정 다른 하나는 완성되는 시점에서 테이블의 모양이 뒤편의 배경과 평면적으로 하나의 풍경으로 구성되며 끝나는 작업입니다. 테이블을 만드는 평범한 일이 비디오의 한 시점에서는 회화적인 시선을 포함하게 됩니다.

김상균/ 의도적 주의력 결 핍 #6-다른 사용 방풍나무 작업과정
<다른 사용>의 캔버스를 만든 이후에 어떻게 사용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열려있는 상태에서 오래 지속되어왔습니다. 가능성 중에 하나는 내가 꼭 마무리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었고 이번의 전시를 준비하면서 일부 실행으로 옮겼고 전시에도 활용할 생각입니다. 나눔의 방식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결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의도적 주의력 결핍>에서 지속적으로 나의 몰입과 작업을 하는 동안의 시간을 말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너의 몰입으로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너의 몰입이 꼭 그림을 그리는 것은 아니겠지만 나의 몰입으로 만들어낸 결과물이 어쨌든 캔버스이기에 자연스럽게 나눔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캔버스가 필요한 어떤 사람에게 모티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나눔은 자본주의적인 방식이 아니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상균/ (다른사용 방풍나무 액자)제작과정
<다른 사용>에 이어서 새롭게 만든 작업이 있습니다. 액자를 만드는 작업입니다. 보조적인 대상으로 생각되는 액자를 선이 강한 자연물인 측백나무 가지로 제작한 것입니다. 주연과 조연의 경계가 모호해집니다. <Making a Table2>의 테이블을 만드는 과정과 액자를 제작하는 과정이 비슷해 보이기도 합니다. 액자도 회화도 테이블 만들기도 모두 어떤 조건에서 주인공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상균/ MAKING A TABLE 2 _ 2 channel video _ 3'2_ 2010
김상균-
E-mail 대화형식을 선택하여서 전시 막바지에 벼락치기를 하고 있는 지금 많이 후회가 되기도 했습니다. 너무 두서없이 주저리주저리 한 것 같아 걱정도 됩니다. 그러나 글을 쓰면 그 글을 당장 읽는 구체적인 상대가 있다는 것은 긴장감을 유지하는 저에게는 좋은 방법이었던 것 같습니다. 피곤했던 만큼 스스로 다시 되돌아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글이 길어지는 것 또한 작업의 앞뒤 맥락을 설명하는 것으로 장점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말씀하지 못한 부분이 있거나 마무리로 하실 말씀이 있다면 해주시고 e-mail 대화를 마치겠습니다.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전기숙-
한 시공간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나누는 휘발성 강한 말이 아니라, 각자의 시공간에서 글로 주고받으며 대화를 한다는 것은 매우 생경하면서도 오묘한 일이었습니다. 글을 쓰면서 잊고 있었던 각자의 특성도 상기하게 되었고, 작품에 대해서도 좀더 깊이 파악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대화를 주고받는 2025년 8월 한 달 동안 더위는 극에 달했지만, 긴장감과 즐거움이 교차되는 시간이었고, 어쩌면 몰입과 변화가 매순간 함께 했던 대화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