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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의 (역사에) 있어 회화라는 장르로 대변 되어온, ‘재현’ 에 관한 논의는 뒤샹이 재편해 놓은 현대미술의 새로운 맥락에서, 자기 부정과 변신을 통해 그 존재/위상 당위성을 끝임 없이 드러내왔다. 동시에 매체가 곧 장르[회화] 가 된 채 여겨졌는데 이때, 우리는 ‘회화’와 ‘회화성’을 분리해 논의 해 볼 수 있겠다. 즉 시대성을 반영하는 매체와의 거리를 두어 다시금 ‘재현’의 문제와 동시에, ‘회화’ 의 근본적 물음을 위시한 동시대적 의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김상균 작가는 일찍이 <9.26>(2007), <space-flat>(2008), <dance>(2009), <Making a tabel-2>(2010) 와 같은 일련의 영상작업에서 평면성이 가진 ‘일루젼’ 에 대한 질문을 ‘영상’ 매체에 담아 드러냈다. 10년 전 당시만 하더라도, 뉴미디어로서의 ‘영상’은 회화와 대척점으로써 현대미술의 새로운 장이자 방법론으로, 마치 구시대의 잔해인 회화를 등지면서 등장하는 듯 했다. 김상균 작가의 영상작업 역시 당시엔 새로운 매체가 보여줄 수 있는 가능성의 다양한 실험 중 하나로 여겨졌을 뿐, 이것이 회화성에 대한 질문과 의심, 그리고 한계에 대한 확장으로 받아들여지기엔 ‘영상 매체’ 에 대한 다양한 실험들이 팽배하여 언급되던 시기였다.

 

<9.26>(2007) 은 광화문의 랜드마크가 되는 건물과 그에 면한 대로변에 지나는 자동차들을 고정된 시점으로 보여주는 영상이다. 작품의 제목만큼이나, 어떤 사건이나 이야기 없이, 도시의 일상적인 풍경을 담고 있다. 작가는 이 영상 속에 등장하는 자동차와 가로수 등의 형태의 아웃라인을 따라 색을 입혀 채운다. 몇 번의 반복적인 행위 끝엔 ‘탱크’와 이로 인해 불거졌을 화염의 이미지가 드러난다. 평범하고 지루한 도시 풍경은 전쟁과 파괴의 풍경일 수도 있다는 것을 너무나 천연덕스럽고 날것의 방법으로 보여주어, 일상 속 숨겨진 이면의 폭력성과 가학성을 드러내 보였다. 작가는 이 작업에서 실재 풍경의 움직이는 영상장면 위에 이질적으로 덧 댄 납작한 붓질을 더하는데 결국 이러한 서로 다른 물성과 이미지는 한데 합쳐져 평면으로 소급됨을 알 수 있다. 즉 김상균 작가는 움직이는 화면인 영상 역시, 평면에 종속되어 있음을, 그것이 가진 평면성을 넌지시 제시한것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영상매체의 평면적 속성에 대한 실험은 <space-flat>(2008)에서 지속 된다. 작가는 빈 벽을 등장시키고, 머리빗과 막대와 같은 오브제를 느슨하고 다소 어설퍼 보이는 손길로 벽에 부착하여 보여주는 영상 화면에 깊이가 있음을 드러낸다. 그 후 이 오브제들을 모터를 이용해 빠르게 회전시켜 만들어낸 잔상으로 ‘정물화’를 구현해 낸다. 이때의 화면은 입체인가? 평면인가? 라는 모호한 질문을 일으키는 작업으로, 이 역시 움직임의 잔상(일루젼)의 영상은 마치 회화가 평면 안에서 형태를 구현하기 위한 방법론과 닮아있으면서 입체가 평면이 되는 과정을 통해 결국 영상의 평면성을 다시금 역전하여 강조하게 된다. 이때의 ‘평면성’은 작가에게 있어 회화성을 상징하는 요소로써 이를 극대화하는 동시에 이의 한계를 적극적으로 드러내 평면성 그 자체를 지속적으로 강조한다. <Making a tabel-2>(2010)에서는 서울풍경이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원근으로 인한 사다리꼴 형태의 운동장 형태에 맞게 테이블을 제작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작업이다. 이는 영상매체에서 평면 형태를 구현하는 것과 평면성이 시간성을 갖는 시도를 통해, 결국 ‘평면성’의 속성이 회화나 영상과 같은 매체에 종속되는 것이 아닌, 시간성을 겸비한 영상에서도 화면 제일 바깥의 맨맨한 평면을 강조해 영상매체 역시 회화의 맥락에 위치시키는 전략을 취한다.

 

작가는 평면성의 한계를 밀어붙이고자, 이를 평면에 안착시켜 더욱 극대화한다. 2015년 개인전 “당신을 위한 풍경” 에서는 회화의 클리셰 격인 풍경들을 등장시킨다. 풍경으로서의 자연과 오브제로서의 자연을 꼴라쥬하여 도시공간 안에서 기형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인공자연에 대한 기이한 풍경을 보여준다. 이렇게 재현된 풍경화의 회화적 방법론은 마치 낭만주의 시대의 픽쳐레스크 회화를 떠올린다. 자연을 담아내는 회화는, 그것이 원본으로 삼은 자연을 넘어서 그림 같은 자연을 원본에 지시기하기에 이르렀다. 이와 같은 자연적 특성이 극대화된 자연은 ‘낭만’이란 수사를 등장시키는데, 작가는 이러한 수사의 극대화로 평면성 즉 회화성의 속성을 다시금 파고든다.

 

이렇게 재현된 회화인 <사비(후렴구)-낭만적인 말의 반복>(2017)은 20세기 초 관광을 장려하기 위해 사진 촬영된 미국의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과장된 자연경관을 연상시키는 풍경들이 증식하듯 등장한다. <또 다른 지구와 부동산에 관하여 이야기 하는 두 남자>(2016), <떠나야만 알 수 있는 것>(2017) 같이 간혹 영화나 이야기 속 장면을 캡처한 이미지를 중첩, 꼴라쥬 하기도 하는데, 인물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짐짓 전작과 구별되는 측면이 있다. 내러티브를 위한 미장센과 인물들을 원작의 맥락에서 분리 혹은 추출한 이러한 다소 뜬금없어 보이는 장면들의 출현은 중첩된 풍경들과 뒤섞여 화면에 표피적으로 부유하게 된다.

 

이는 동시대 대중문화의 코드를 차용, 탈맥화하는 전략이기도 하지만, 자연이 기 재현된 영상에서 캡처(재생되는 화면 중에 한 장면을 잘라낸 것, 혹은 시간성이 제거된 것)된 것은 전작에서 보여준 바와 같이 패널(모니터)로 보여 지는(경험 되는) ‘평면성’ 이 극대화된 사건이나 이야기의 재-재현에 가깝다고도 볼 수 있겠다. 이는 <방-납작한>(2016)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대중적으로 흥행한 영화의 캡쳐 이미지는 마치 극장 스크린에서 비껴본 상영장면을 드러낸다. 시간적 흐름을 담아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건들로 이루어진 영화는 결국 스크린이라는 평면에 영사되어 재현된다는 사실을 ‘납작한-방’ 이라는 역설적 공간을 빌어 언급하고 있다.

 

이렇게 구성된 회화는 풍경화 적인 요소들의 반복과 과장으로 인해, 다소 조작된 ‘인공풍경’의 면면과 닮아있다. 어딘가 있어야 할 장소가 아닌 곳에 존재하는 것처럼, 풍경과 풍경을 중첩하고 덧댄 풍경은 다수의 소실점이 존재하고, 줌-인, 줌-아웃이 한데 섞여, 그 시점을 따라가다 보면 평면임에도 불구하고 영상 매체가 갖는 시간성을 연상시키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풀빌라-2>(2017)은 원경에서의 설경 산자락과 근경의 수영장 풀을 동시에 등장시키는 직접적인 의미에서의 그 시간성을 넘어선다. 서로 다른 시간대와 풍경의 요소들은 그려 이어나가기만 하면 무엇이든 담아낼 수 있는 회화적 특성이 적극 구현됨으로 가능해진다. 작가는 한편으로 초기 영상작품들에서 보여준 날것의 과정을 회화에서도 드러내고 있는데, 중첩된 이미지는 아웃라인이 되는 화면의 프레임을 등장시켜 숨기지 않는다. 고전적 재현 방법론과 같은 붓질이 등장하는가 하면, 팝아트의 생생한 색채들이 납작하게 붓질되어 있다. 이는 영상 매체에서 오히려 회화성을 이야기하거나 혹은 그 반대를 드러내고자 하는 재현기법의 아이러니에 대하는 작가의 위트가 드러나기도 한다.

 

이번 "작위" 시리즈에서 선보이는 일종의 풍경화들은 언뜻 풍경화를 구현하는 고전적인 수사를 성실히 따르는 듯 익숙한 붓질을 보여주지만, 강과 바다, 그리고 하늘이 맞닿아 있거나 만년설에 뒤 덮힌 산맥은 용암이 동시에 흘러내린다. '작위'는 사실과 다른 의식적인 행위를 뜻하는데, 넓은 의미에서 보면 회화는 마땅히 작위를 함의한다. 사진이 눈에 보이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제시하여 그 사진 이미지가 놓이는 행간에 따라 맥락이 형성되는 것과 다르게, 회화는 그 스스로의 맥락을 제시하는 자기 완결성을 지닌다. 김상균 작가의 작위 시리즈에서는 회화가 가진 이 자기 완결성을 극대화하여 과장된 이미지들이 회화적 특징을 극단으로 몰아, 전작의 평면성에 이어 회화적 깊이를 파고드는 듯 하다. 이 안에서는 장면, 계절 그리고 시선까지 그 스펙트럼이 넓게 펼쳐진다. 마치 세계사를 넘어선 지구사를 접하는 듯 한 무한한 시간성과 공간을 재현하는 듯 하면서도 불현듯 붓질을 멈추거나 드러내보여 이것이 재현된 장면임을 끊임없이 상기 시키고 있다.

 

이렇게 ‘재현’ 적 방법론이 강조된 김상균 작가의 풍경회화는 회화, 평면, 재현을 넘어서, 시각 이미지에 대한 고찰로 귀결된다. 환타지(일루젼), 즉각적 감각의 표피성은 동시대 자본주의가 극대화된 소비문화가 가진 면면으로 적합하다. 이러한 표피성을 넘어서 대상의 본질과는 이질적으로 전도된 이미지를 폭로하면서 이미지가 의미하는 것과 이미지 독해가 가진 선입견과 편견 이면을 살피고 대상의 본질에 다가가고자 하는 시도를 지속하는 것은, 회화, 영상과 같은 매체의 속성에 한정되지 않는다. 각각의 매체는 재현의 속성을 극대화하거나 한계에 부딪히게 하는 계기로서 작동하여, 매체가 곧 장르로 명명된 고리를 끊어내, ‘본다는 것’ 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지속할 수 있게 된다. 이로써 작가는 영상에서 최근 회화작업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작업들은 결국 회화적 기호들을 생산해 나가면서 재현의 역사를 이어가는 ‘회화성’ 에 대한 고찰의 연장선상에 그의 작업이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한다.

김상균 ‘작위’

장윤주(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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