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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머리 속에서 끊임없이 떠오르는 상상된 수많은 이미지들을 계속해서 이어나간다는 것은 가능한 일인가? 김상균의 작업을 보면 그려낼 공간만 주어진다면 끊임없이 이미지들을 연결시켜 나갈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그가 회화 작업을 통해 보여주는 장면들은 대부분 어떤 풍경들이다. 그 풍경 속에는 인물, 사물, 자연, 기하학적 문양까지 다양한 이미지들이 중첩되어 나타난다. 그렇다면 그는 왜 이런 복잡한 표면을 가진 작업들을 만들어내는지 살펴보는 것이 그의 작업을 이해하는 첫걸음일 것이다. 작가 자신은 이전까지의 작업들에서 다양한 이미지들에 대한 관심으로 여러 장면들이 혼재된 초현실주의 같은 풍경들을 그려내면서도 이를 불편한 이미지들의 결합이라 언급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런 이미지의 중첩은 요즘 같이 이미지가 쉽게 생산되고 소비되는 세상에서는 전혀 불편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렇기에 그가 생산해 내는 이미지가 자체가 불편한 것이 아니라 작가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기존의 회화적 문법을 습관적으로 고수하는 태도와 함께 하나의 이미지에서 다른 이미지로의 빠른 관심의 전이 그리고 다양한 방식에 대한 사용의 욕구가 서로 상충되면서 느끼는 이질적인 감정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런 의미의 불편함을 이미지로 혼재된 풍경으로 구성하면서 개별의 대상들이 가지는 형태와 내용을 이어 붙여 커다란 하나의 장면으로 담아내고자 하였다. 이와 동시에 다양한 물감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표면 질감, 색, 그리고 이를 표현하는 기법 등 시각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많은 요소들을 동시에 사용하는 시도를 통해 점점 증식되어 나가는 자신의 작업 안에서의 이미지와 표현법 대한 양가적 태도를 지속적으로 고민해오고 있다.

 

그런데 이번 《의도적 주의력 결핍》 전시에서는 이전과 다른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우선 전시 제목인 《의도적 주의력 결핍》부터 살펴보자. 이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보다는 작가의 개인적 성향에 맞추어 읽어 내야만 한다. 주의력 결핍은 우리에게는 보통 주의가 산만하여 하나에 집중을 못하고 딴 짓을 하여 무엇을 올바로 해내지 못하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표현이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주의력을 결핍 시킨다는 것은 뭔가 어법에 맞지 않는 표현이다. 먼저 주의력 결핍부터 달리 생각해보면 이는 작가의 관심이 하나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접하고 경험하는 모든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으로 돌려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그의 이번 작업에서 보여주는 장면처럼 하나에 집중하여 명확한 형식을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경계에 고정되지 않고 유동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수식어인 의도적이라는 단어도 무엇을 하려고 계획한다는 원래의 의미로 읽으면 안된다. 여기서 작가가 말하는 의도적이라는 표현은 지금까지의 자신의 계속되는 관심의 변화와 집중하지 못하는 성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변화된 수용적 태도로 생각해야 한다. 이러한 전제를 가지고 그의 신작들로 돌아와 보자. 《의도적 주의력 결핍》연작의 소재는 여전히 이미 남들에 의해 생산되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얻어지는 거나 실제의 대상을 보고 경험하게되는 자신의 주변에서 접촉하는 모든 이미지들에 기인한다. 그리고 이를 하나의 대상을 그려냄으로써 출발점으로 삼고 계속해서 이어나간다. 이런 인과 관계에서 벗어난 것들의 연속적인 연결 방식은 이전 작업들에서도 발견되는 지점들이다. 그렇지만 최근의 작업들은 화면 안에서 자유로운 운동성을 획득하고 있다는 점이 이전 작업들과 비교하여 확연한 차이를 드러낸다. 예전 작품들은 서로 다른 연결 고리가 없는 이미지들로 이루어져 있기는 하지만 화면 안에서 어떻게든 하나의 풍경으로 구성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의도적 주의력 결핍》연작들은 이미지가 하나의 화면에서 벗어나 다른 화면으로 넘어가는 구조적인 변화로 이어지는 물리적인 확장과 더불어 여러 기법들로 이루어진 이미지들이 서로에게 개입하는 중첩된 레이어들로 인해 화면 안에서 깊이감을 드러낸다. 이는 작품 전체와 화면 내부에서 수평과 수직으로 교차하는 복잡한 리듬감을 획득하고 있다. 또한 그의 작업들은 개별적인 캔버스의 화면들이 서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 같으면서도 이내 단절되어 독자적인 영역으로 벗어나는 모호한 경계를 가지고 있다. 물론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이어진 이미지들은 서로에게 기인하여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어떤 순차적인 서사 구조를 가지지 못하면서도 여러 장면들이 마치 하나의 이미지로 이어지는 구체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구성으로 보이기도 한다. 물론 처음 작가가 무엇인가를 선택하고 그려나가는 동안에는 명확하게 어떤 이유와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원래의 대상이 가지고 있었던 서사는 점차 자연스럽게 사라져 그 표면만을 남긴다. 이는 그가 과거보다는 현재 그리고 직전의 지나온 것 보다는 지금 이 순간에 얻어지는 감각들을 최대한 고스란히 화면에 옮기고자 한 결과이다. 그리고 이는 이전의 완성된 것과 지금의 진행중인 것 사이의 상이한 연결에서 고민하기 보다는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는 혼재되어 있는 현재적 이미지를 인식하고 그 순간 순간을 고스란히 그려내기 위함이다.

 

이제는 이를 구체적으로 <의도적 주의력 결핍 #2>을 통해 살펴보자. 이 작품은 9개의 개별적인 캔버스작업이 연결된 작업이다. 이는 <의도적 주의력 결핍 #2-1>에 보여지는 두 개의 다른 의자를 그리는 것으로 시작했다. 물론 이런 작업은 선행된 이미지에 대한 작가의 반응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단순히 이미지의 연속성과 인과성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반복되는 패턴, 기하학적인 움직임, 색 그리고 다양한 회화적 기법을 통해 더욱 복잡한 중첩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를 통해 어떤 이미지들을 두드러지게 전면에 내세우고, 어떤 것들은 반대로 은폐를 시도한다. 또한 화면과 화면의 연속성은 캔버스의 배치에 따른 물리적인 이미지의 연결과 동시에 완전히 다른 이미지를 시작하기 위한 단절을 시도하여 공간적 전환을 의도한다. 또한 화면 안에 그려진 여러 반복적인 문양과 프렉탈 이미지는 복잡한 화면 속 공간 확장을 한층 더 가중시킨다. 그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시간적 분절로 또 다른 변주를 가미한다. <의도적 주의력 결핍 #2>는 개별 작품의 번호로 순서대로 이어져 있지 않다. 1번을 그림을 중심이고 왼쪽화면에서 이어나간 그림은 어느 정도 진행된 이후 멈추고 다시 1번의 오른쪽 화면에서 진행되어 나간다. 그렇지만 왼쪽과 오른쪽의 진행된 작품 모두 시간의 순서대로 순차적으로 그려진 것인지는 명확하게 알 수 없다. 따라서 이러한 비연속적인 화면의 시간과 공간의 활용은 그의 지금 작업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사실은 위와 아래로의 연결도 가능하며 언제든지 재배열을 통해 새로운 조합도 가능한 일시적인 상태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그의 작업은 일반적인 읽기의 방식이 적용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작품을 바라보게 될 때 우리는 이미지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 주변과 또 다른 대상들을 인과의 논리로 파악하여 인식하려고 한다. 하지만 김상균의 작품을 보기위해서는 우리도 그의 표현대로 의도적으로 주의력을 결핍 시켜야만 한다. 하나에만 집중하면 나머지를 놓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이는 작가의 주관적인 의식의 흐름을 무조건 따라가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그가 보여주는 다양한 방식의 기법과 이미지들과 그가 임의적으로 연결한 시공간의 흐름을 관객 스스로가 자신이 바라보는 대로 변형시키면서 즐기며 무엇인가를 감각해내는 적극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어쩌면 작가의 이러한 작업 태도는 너무나 쉽게 생산되고 소비되어 버리는 이미지 범람의 시대에서 우리가 어떤 태도로 이를 받아들이고 해석하여야 하는지에 대한 우리의 자세에 대한 고찰을 촉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하나의 이미지에 기인하여 계속해서 증식해 나가는 이미지로 이루어진 작업은 작가가 무엇인가를 그리고자 하는 충동을 제어하지 못한 채 끝없이 어디론가 흘러가는 무의미한 결과로 마무리 될 수 밖에 없다고 치부해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작업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특별한 의미를 생산하는 결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전과는 다르게 작가 자신이 이렇게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작업의 과정을 스스로 의식하고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위에서도 잠시 언급했던 것과 같이 그는 지금까지 이러한 자신의 성향과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 속에서 발생하는 충돌을 불편하게 느껴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번 《의도적 주의력 결핍》연작에서 작가는 이를 자신의 고유한 것으로 인정하고 이를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적용하였다. 이 태도의 변화는 단순한 선택의 문제로 보이지만 작가에게 있어서는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 이러한 변화를 통해 그는 이미지들 사이에 인과적 연결과 단절, 연속성과 비연속성 같은 충돌되는 지점에서의 불편함에 얽매이기 보다는 자유로운 사고의 확장을 통해 이미지들을 새롭게 지각해 나가면서 그 의미를 새롭게 전환해 나가는 자연스러움을 획득하고자 노력한다. 이는 그가 말하듯이 이제 무엇인가를 그린다는 행위는 그것이 무엇이든 맨 처음 제시한 선행하는 이미지에 기인하여 이미지를 증식시켜 나가는 하나의 놀이와 같이 단순해졌다. 놀이는 싫증나면 다른 놀이를 이내 옮겨가면 되고, 하나의 놀이에 집중할 때에는 자신만의 규칙을 추가하여 완전히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그리고 언제든지 갑자기 놀이 자체를 끝내 수도 있다. 그리고 놀이를 지속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요소는 즐거움이다. 이러한 변화된 태도는 그가 자신을 둘러싼 것을 경험하고 온전히 감각해내어 작업으로 가감없이 고스란히 작품에 담아낼 수 있는 방식이다. 이는 결국 서두에서 언급하였듯이 ‘의도적 주의력 결핍 ‘은 하나에 집중하다가도 이내 다른 방향으로 전환되는 자신만의 성향을 이제는 온전히 받아들이고, 이를 적극적으로 작업에 활용하기 그리는 것을 즐기기 시작했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여전히 자신의 성향에는 변함이 없지만 이를 자신에서 분리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깊이 체화(體化)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이번에 선보이는 전시의 작품들이 이전의 작업과는 다르게 화면 안과 밖에서 이미지가 자유로운 시공간을 구성하면서 어느 방향으로든 증식되어 나갈 수 있는 생기 있는 기운으로 충만한 이유이다.

2020 제주청년작가전

<비로소 자유로워진 것들>

신승오(페리지갤러리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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