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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적 주의력 결핍

 

주의력 결핍 진단의 그리기 과정과 나의 작업이 유사성과 동시에 차이를 보았다. 하나의 화면에 대상들을 상호 연관 없이 나열하는 것이 유사했고 주의력 결핍은 의도 되었다는 차이가 있다. 나는 주의력 결핍의 상태를 작업에서 지향하고 있으며 동시에 이 과정을 스스로 의식하고 있다. 주의력 결핍은 오히려 강한 몰입을 의미한다. ‘의도적’이라는 수식어는 반대로 몰입이 어려움을 반증한다. 몰입을 방해하는 불편한 어떤 것으로부터 몰입이 가능한 상태로의 이동을 위해 자연스럽게 선택된 작업의 방법론이 ‘의도적 주의력 결핍’이라고 말할 수 있다.

 

불편한 것에 대해 대략적으로 말해보자면, 몸이 감응하는 어떤 지점에서 출발하였으나 다른 목표를 향하고 있음을 직감하는 순간에 불편함은 발생했던 것 같다. 과거의 작업에서 한 가지 경우를 돌아보면, 자연이 조경이 되는 순간이 그랬다. 나무, 흙, 풀이라는 같은 단어를 사용하지만 각각의 위치에서 둘은 다르다. 몸이 감응했던 작동 방식은 상실되었고 어쩌면 감각을 닫아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닫아버렸던 혹은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던 감각의 시도는 당연한 불편함을 동반한다. ‘의도적 주의력 결핍’은 인간 실격을 면하기 위한 실천의 놀이이다.

 

<의도적 주의력 결핍>에서 작업의 시작은 몸이 반응하는 동기를 발견하는 것이다. 형태, 표면의 질감, 이미지의 내용, 색, 물성 등 시각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많은 상상을 실행할 수 있다. “의도적 주의력 결핍 #2”에서는 두 개의 다른 의자를 그리는 것으로 시작했다. 의자의 형태가 다르며 그에 대응하는 차이들을 느낀 것이 작업의 시작이었다. 시작은 과거가 된다. 어제의 이미지는 오늘에 다른 것이 되었다. 선행된 이미지에 대해 반응 한다. 때로는 연상하고 반대로 은폐를 시도하거나 완전히 다른 시작을 하는데 이것들은 복합적으로 발생하기도 한다. 회화의 표면들의 조우는 일종의 사고이다. 실재적인 문제가 발생하거나 또는 실행의 결과물이 다시 과거가 되고 나는 또 다시 반응한다. 사고는 현재에 집중하게 한다.

 

선행된 회화의 표면에 대한 연속된 반응이라는 이라는 규칙을 갖는 놀이가 되었다. 앞서 언급했던 ‘불편한 것’이 반응 속에서 일부 작동한다. 과거가 된 이미지들은 여러 가지 해석들을 파생하며 신화화되고 결국 껍질만 남는다. 껍질은 몸이 감응하는 직접적인 세계로부터 다른 방향으로 변질되었다.

2018 개인전

​의도적 주의력 결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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