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층적 세계 속의
평면적 유희
신시호, 큐레이터
김상균은 그동안 비디오 아티스트로서 활동해왔다. 그러던 그가 2015년 개인전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회화작가로서 작업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사실 그가 비디오 작업을 하던 때에도 회화라는 매체는 작업의 단골 소재였다. 비디오에 회화를 사용한 작업은 평면의 그리드에서 이루어지는 화가의 몸짓이었던 것이다.
뉴미디어에 대한 작가적 호기심과 탐구 열정에 빠져있던 그가 어느 날인가부터 캔버스에 유화물감으로 붓질을 하기 시작했다. 사실 비디오에서도 그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런데 화가처럼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는 그림 그리는 것이 즐겁다고 말한다. “어차피 돈도 안 되는 거. 하고 싶은 거 하자!” 작가의 말에서는 2016년 대한민국에서 활동하는 청년작가의 시대상황을 엿볼 수 있다. 과연 예술은 인간에게 어떤 존재인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에게는 풍요보다는 결핍이 시대를 장악했다. 그러나 산업화를 마무리한 21세기의 세상은 물질이 분명 넘쳐나는 상황이다. 작금의 부(富)는 고르지 못하여 인간 내면의 항심(恒心)을 균열시킨다. 권력은 균열된 항심을 채우고자 대중문화를 대량생산한다. 자본과 함께 대중이 소비할 수 있는 문화는 과다 섭취를 우려할 정도로 넘쳐흐른다. 과연 그 문화는 우리가 소화할 수 있는 것인가? 과연 우리의 정신을 살찌울 수 있는 건강한 영양소를 지닌 것인가?
김상균은 작가이기 이전에 한 시대를 사는 평범한 젊은이이다. 1인 가구의 구성원이자 불안정한 직업을 갖고 있고 세상이 구성한 매트릭스에 부품처럼 살아간다. 그러나 그는 예술가로서 세상을 보는 시점을 남들과는 다르게 설정하였다. 전통적 그림쟁이의 자세로 현실과 가상을 혼동하게 하는 디지털 세계를 유랑한다. 그가 화면에서 조직하는 다층적 세계는 범람하는 대중문화의 이미지를 가지고 노는 놀이터이다. 이런 놀이를 통해 균열된 자신의 정서에 예술이란 보충재를 채워 넣는다. 그러한 작가의 놀이에 관객들도 유사한 유희가 가능할까?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근본적으로 외부 세계를 모방하는 미메시스적 유희이다. 현대의 인간에게 유토피아나 이데아 같은 허상은 잠재의식에서조차도 그 흔적을 찾기 어렵다. 김상균은 이를 간파하고 허망의 굴레를 벗어나 예술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어차피 이루어질 수 없는 달콤한 꿈 대신, 현실 속에 존재하는 예술은 결국 ‘호모 루덴스’의 본능을 충족시키는 기제로서 존재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