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의 모티브 - 평면적인 시선
내 작업에서 평면적인 시선이란, 일상의 대상들을 바라볼 때 대상들의 표면적인 의미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한 가지 방법이다. 예를 들면 ‘9.26’에서는 도시를 오가는 자동차들을 평면의 그리드로 가져와 외각형태만을 따고 그 안에 색을 채우는 방식으로 작업했다. 이렇게 해서 원래의 자동차와 다른 형태인 탱크가 연상된다. 일상의 대상들의 표피적인 의미는 제2의 공간으로 이동하며, 나는 그 순간을 관객과 공유하고자 하였다.
회화+비디오
작업의 진행은 일상의 대상들을 바라보고 머릿속으로 대상의 형태들을 연상하여 스케치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 후 일상의 대상을 카메라로 기록하고 스틸 컷을 추출하여 그 형태를 블루스크린으로 가져온다. 그리고 이를 따로 제작된 그림 그리기의 과정기록과 합성한다. 블루스크린은 회화의 물리적인 과정을 직접적으로 기록하기위한 장치이다.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한 비디오의 기록과 편집 속에 ‘일상의 이미지-회화의 과정-일상으로부터 전환된 회화의 공간’이 연속적으로 일어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회화의 물성, 화가의 제스처, 일상에서 회화의 공간 들이 표면위로 떠오르기를 기대하였다.
일상적인 소재와 비디오의 시점
비디오에 등장하는 주된 소재는 주로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기에 무심히 바라보게 되는 대상들이다. 도시 풍경 속에 건물들과 자동차, 나무, 공원 등이 그러하고 일상생활 속에 물건들이 그러하다. 나는 우리에게 익숙한 대상들을 항상 바라볼 수 있는 시점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그 대상들을 조작하려하였다. 화가가 바라보는 시점과 관객이 보게 되는 비디오의 시점은 동일하다. 비디오를 일인칭 시점으로 하여 화가가 조작하는 대상들에 관객이 개입 할 수 있기를 기대하였다.
시나리오
일상적인 소재들을 촬영하고 그것들을 작업실로 가져와 평면화 시킬 때 우연히 형태가 탄생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했던 모든 작업에서 완성된 회화의 형태는 미리 계획된 형태이다. 작업의 시나리오를 짜고 계획적으로 진행한 것은 바탕이 되는 일상의 이미지와 변형된 회화의 이미지 사이에서 전환되는 의미를 연출하기 위해서이다. 한강시민공원의 한 구석에서 큰 건물들을 촬영하고 건물들 밑에 화분을 그린 '한강시민공원'에서는 건물을 도시라는 울타리 안에서 사회, 경재논리에 의해 자라나는 식물처럼 보여주고 싶었다. 또한 한강시민공원이 조그만 화분이 되면서 그 위에 사람들 역시 도시의 시스템 속에 기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2008년부터 진행된 작업
2008년 이전 까지 진행했던 작업에서 일상의 이미지와 회화적 공간을 비디오로 기록하고 편집하는 형식으로 작업을 진행해 왔다. 즉 회화와 비디오의 형식적 특성을 사용하여 형식적 전환을 하고자 하였던 작업이었지만 형식적으로 반복되고 있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래서 2008년의 작업에서는 평면적인 시선은 유지하되 회화의 물질적 행위를 빼는 실험을 하였다. 평면적인 형태를 만드는데 있어 회화의 그리는 방법대신 모터를 단 기계장치를 만들어 회전시키면서, 그 때 생기는 아웃라인을 평면적인 형태로 보이게 만들었다. 이와 같은 변화는 회화의 방법적인 측면보다 평면적인 시선(사물의 의미를 전환하여 바라보는 시각)에 좀 더 포커스를 맞추기 위해서이다.
시각 전환 장치
2009년에 진행된 작업들은 이미지를 일그러트리거나 평소에 볼 수 없는 동영상 이미지를 만들어 시각적 전환을 하는 작업들이다. 자동차 바퀴에 카메라를 매단 작업은 자동차를 타고 가는 일상적인 제스처를 통해 도시의 이미지를 일그러트려 도시를 바라보기 불편하게 만들려 한 것이다. 그리고 한강의 가양대교에서부터 천호대교사이의 강 건너편 도시를 35개의 채널로 촬영한 작업은 일상적인 시선으로부터 지도를 대하듯이 넓은 시선으로 전환하려 한 작업이다. 마지막으로 비보이의 머리에 카메라장치를 매단 작업은 비보이의 시각을 통해 도시의 이미지를 일그러트리기 위한 것이다.
회화적 제스처에서 일상적 제스처로
회화와 비디오를 사용한 작업이 평면의 그리드에서 이루어지는 화가의 제스처였다면 기계장치를 만들 때 나는 청계천의 기계 제작자였다. 그리고 강 건너편의 도시들을 머릿속에서 이어붙이는 상상을 할 때 나는 지도를 머릿속에 펼쳐보는 부동산의 중계업자이기도 하였다. 마지막으로 자동차 바퀴에 카메라를 달거나 비보이의 머리에 카메라를 달아 도시의 이미지를 일그러트리는 작업은 또 다른 제스처가 된다. 매일 도시를 오가는 자동차 바퀴의 시점에서도 전환이 일어나고 춤을 추는 비보이의 시선에서도 전환은 일어난다.